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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9-20 11:00

  • 박스기사 > 연재-이서빈 시인

무궁화/ 이 옥

(환경시 특집)

기사입력 2026-09-1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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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이 옥

 

달 사이로 초록의 시간이 일렁이고

진딧물에 동상을 입은 무궁화

결빙의 시간을 밀어냈다

 

저렇게 차갑게 살다가

끝내 손끝에 닿은 짧은 순간에도

뿌리를 내렸다

 

넝쿨지던 슬픔줄기 걷어내고

영롱하게 피어난 백단심 홍단심 청단심

일편단심이었다

 

백의민족 배달계로 태어나

가늘고 고운선

꽃잎가장자리 타고 오르는 아사달

점점이 흩뿌려주는 축복가루

 

단군의 자손은 후천 미륵세상 씨종자

 

지금은 홀꽃

언젠가 북한과 겹치는 겹꽃이 되리라

 

무구삼매에 빠진 무궁화가 천지무궁하다

 

비탈진 나무그늘 흔드는 소리

자꾸만 귓속으로 들어온다

근화향이란 나라에 유배되어 있는 걸까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있던 순간에도

아무일 없다는 듯 돌아가는 세상

 

꽃이 향기 펄럭이며

반기는 굳건한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무구삼매:번뇌를 벗어난 부처와 보살의 청정한 경지

 

 

 

불이문不二門/ 이옥

 

해 달 별 그 어떤 것도 하나의 문을 통과한다

 

열린문은 반드시 닫히고

이승과 저승

이쪽과 저쪽도 모두 같은 문

 

서로 맞물려 회전하는

미완의 음

여백의 양

 

황급히 떠난 문너머 세상은

문고리도 없다

 

차별이 없는

이 문을 통해야만

불국토가 전개되고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지혜선 인내선으로

태극문양 지키고 있는 건곤감리

 

삶은 수없이 문을 여닫는 바람발자국과 같은 것

 

수미산 정상에

구름그네 타고 올라서면

어둠이 환한 향기로 바뀌는 도리천에 다다른다

 

봄빛 파종해 놓은

불이문에서

붉고 푸른 싹들 잇몸이 간지럽다

 

 

 

컵속 태풍/ 이옥

 

컵속에서 태어난 바람은 수세기를 도도히 떠돈다

 

식물성 광합성과 동물성 광합성의 극점을 돌아나온 거룩한 바람

삶이 닿지 않는 곳엔

부재중이란 팻말이 서있다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

밤은 더욱 밝아

돌멩이속에서 차를 달인다

돌멩이속에서 달여진 차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난다

 

마른강이 흐르던 찻잔에 폭풍이 일면

컵 바닥에 영혼은

어두운 시간을 그늘로 남겨둔다

 

한차례의 해일이 지나가고

마주한 잔잔한 바다 한 잔

폭풍을 이겨낸

찻잔속에서 물소리만 흥건하게 고여있다

 

허공 뚫는 나무

햇살 꺾은 계절은

젖은 사람들과 함께

망중한 건넌다

 

태풍영역에서 벗어난 컵

입술에 묻혀본다

 

 

 

뿌리는 얼어붙은 시간에 내린다.

이옥 시인의무궁화에서 꽃은 모든 것을 견딘다.

피어나기 위해서 견디는 것이 아니라 견뎌냈기에 피어나는 것이다.

결빙을 이긴 후에 꽃이 개화하고, 상처를 다독인 후에 향기가 생겨나며, 슬픔을 견딘 후에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무궁화는 아름다움의 대상이라기보다 시간을 견뎌내는 생명의 형식이다. 이건 우리 민족성과도 너무나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옥 시인은 생명이 피고 지는 꽃의 순환을 통해 인간의 역사와 지난 시간을 다시 소환하게 하며, 한반도의 분단과 회복이라는 거대한 식물적 생명의 언어로 번역해낸다.

 

달 사이로 초록의 시간이 일렁이고라는 이미지에서 시간관은 통상적인 역사적 시간과 결을 달리한다. 시간은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고 일렁인다달과 초록 사이에서 흔들리는 시간은 자연의 순환성과 생명의 리듬을 내포한다.

초록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생명, 끊임없이 갱신되는 현재, 흔적 없는 생멸이 반복되는 가능성의 색이다.

진딧물에 동상을 입은 무궁화는 두 상처를 하나의 문장에 결합하여 매우 이질적인 것을 녹아나게 한다. 진딧물은 생명을 갉아먹는 미세한 침입자이고 동상은 외부의 혹독한 환경이 가하는 상처다. 이는 생명 내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과 생명을 둘러싼 환경에서 발생시킨다. 생태적 감각을 드러내기 위해 무궁화를 공격한다고 말하고 있다.

자연은 서로 다른 생명이 부딪히고 침범하고 견디며 함께 공존하는 관계의 장이라는 지점에서 무궁화는 인간의 역사와 겹쳐진다.

결빙의 시간을 밀어냈다라는 구절에서 결빙은 역사적 은유이며 기후적 현상이다.

얼어붙은 것은 땅만이 아니다. 관계도, 시대도 날씨도 모두 얼어붙을 뿐 아니라 한반도의 역사에서 분단은 하나의 거대한 결빙으로 자리하고 있다.

시간이 단절되고, 지리적 생태계가 정치적 경계에 의해 갈라진 채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궁화가 결빙을 밀어낸다는 것은 단순히 봄이 겨울을 이긴다는 자연의 서사가 아니라 정지된 역사에 생명의 시간이 다시 침투하는 사건이다.

 

저렇게 차갑게 살다가/ 끝내 손끝에 닿은 짧은 순간에도/ 뿌리를 내렸다.’는 작품의 존재론적 중심이 드러나는 문구다. 생명은 가장 짧은 순간에도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여기서 뿌리는 존재의 근거인 동시에 식물학적 구조로서 역할을 한다. 뿌리는 과거에 고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 땅속에서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한다.

넝쿨지던 슬픔줄기 걷어내고라는 구절에서 슬픔을 덩굴처럼 자란다고 했다.

슬픔은 단순히 마음속에 머무는 감정이 아니라 주변의 사물과 시간을 휘감는 식물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슬픔을 잘라내거나 부정하지 않고 걷어낸다’. 다시 말해 상처를 제거해 없애는 것이 아니라, 엉켜 있는 것을 풀어낸 자리에 백단심 홍단심 청단심이 피어난다.

백의민족 배달계로 태어나라는 표현은 신화와 민족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기며 단순히 박제된 신화가 아니라 기원은 씨앗처럼 현재 속에서 계속 발아하는 것이다. ‘꽃잎가장자리 타고 오르는 아사달이라는 표현은 역사와 자연의 경계를 허문다. 꽃잎 위로는 역사가 흐르고, 꽃은 하나의 유기체가 된다.

 

단군의 자손은 후천 미륵세상 씨종자는 시간의 구조를 한 번 더 뒤집으며 단군은 기원을, 미륵은 도래할 미래를 상징하며 그 둘 사이에 씨종자를 놓는다. 씨앗은 과거의 유산이면서 미래의 유산이다. 아직 꽃이 아니지만, 미래를 발생시킬 힘을 현재 속에 품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미래는 씨앗에서 움튼다.

 

불이문을 따라가 보자.

해 달 별 그 어떤 것도 하나의 문을 통과한다라는 첫 구절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을 단숨에 제시하며 독자들을 압도한다.

여기에서 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다. 문은 경계를 만들면서 동시에 그 경계를 넘어가게 한다. 문이 없다면 안과 밖의 구분도 없지만, 동시에 통과의 가능성도 없다. 그러므로 문은 분리의 장치인 동시에 연결의 장치로 이 역설이불이문의 핵심이다.

열린문은 반드시 닫히고문은 열리고 닫힌다. 열림만으로 존재할 수도 없고 닫힘만으로 존재할 수도 없다. 이 간단한 사실 속에 삶의 구조가 들어있다. 태어남과 죽음, 만남과 이별, 시작과 끝은 서로 반대되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맞물려 있다. 그래서 시인은 이승과 저승/ 이쪽과 저쪽도 모두 같은 문이라고 말한다.

서로 맞물려 회전하는/ 미완의 음/ 여백의 양이라는 구절은 이러한 불이의 세계를 음양의 원리로 확장한다. 음은 완성되지 않았고 양은 비어 각각 결핍을 품고 있다. 완전한 음과 완전한 양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미완의 것과 여백이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 회전한다는 원리로 풀어낸 시다. 나는 너와 다르지만, 너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불이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컵속 태풍은 이미 제목에서 상상력을 돋보이게 한다.

컵속에서 태어난 바람은 수 세기를 도도히 떠돈다라는 첫 문장은 이미 현실적인 크기의 질서를 무너뜨린다.

아주 작은 컵 안에서 태어난 바람은 수 세기를 떠돈다는 말은 공간은 작지만, 시간은 거대하다는 말이다. 이 작품에서 컵은 하나의 소우주다. 그 우주 안에서

바람이 태어나고, 폭풍이 일고, 해일이 지나가고, 다시 잔잔한 바다가 만들어진다.

 

삶이 닿지 않는 곳엔/ 부재중이란 팻말이 서 있다이 짧은 문장에 인간의 죽음과 삶이 모두 들어있다. 이렇게 짧은 속에 죽음과 부재를 다 담을 수 있는 건 아마 한글이 유일할 것이다.

이 자랑스러운 한글이 곧 환경 경전이란 거룩하고 숭고한 이름을 앞가슴에 달고 세계를 누빌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이옥(본명·이옥희 시인 약력

이  옥 시인

*경남 거창 출생

*남과 다른 시쓰기 동인

*월간 문학세계 등림

*한국문인협회 회원

*성동문인협회 회원

*모던포엠작가회 회원

 

 

 

# 이서빈 시인 약력

이서빈 시인

경북 영주 출생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 : 달의 이동 경로」 「함께, 울컥」 「올챙이를 산란하는 비요일

창의력 사전다수

대하소설 소백산맥영주신문 연재 후 17권 완간

한국 문인 협회 인성교육 개발위원

한국 펜클럽 회원

시인뉴스. 모던포엠. 스토리문학편집위원 코리안드림 선정위원

이메일: happyjy8901@hanmail.net

 

 

권대현 (youngju@new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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