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한 해 여름에는 제주도를, 그다음 해에는 울릉도를 고교 친구들과 여행한 적이 있다. 젊음이 있었기에 마냥 즐거웠고, 훼손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다. 그 당시 함께 했던 친구 중 두 명이나 먼 길을 떠났으니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는 추억이기도 하다. 나머지 친구들도 네 명이나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 한 명은 먼 지방에 거주하니 청춘을 함께 했던 12명의 친구들도 단톡방의 멤버일 뿐, 함께 커피 한 잔 나누기도 쉽지 않다.
그 당시의 울릉도와 제주도는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곳이었다. 자연이 살아있어 도시와는 전혀 다른 감흥을 전해주었다. 그 이후 제주도는 방송이다 건축이다 골프다... 수십 번 다녀왔고, 울릉도는 작년에 가족들과 함께 다녀왔다. 갈 때마다 자연스럽게 옛 추억을 떠올리게 되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움만 안고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며칠 전 호주 남단의 섬 태즈메이니아에 다녀왔다. 제주도의 34배, 남한 면적의 62%에 달하는 큰 섬이기에, 6일간의 여정으로는 주도인 호바트 인근을 관광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 마디로 아름다웠다. 'Wild view'라는 캐치프레이즈대로 거의 손대지 않은 자연이 그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었다. 태즈메이니아에서 색다르게 느낀 것 중 하나는, 모든 관광 코스가 사람 편이 아닌 자연의 편이었다는 점이다. 시내 중심가를 빼고 거의 모든 도로는 왕복 2차선 도로였고, 식당과 매점, 화장실 등의 시설도 불편하리 만큼 최소화되어 있었다. 관광객은 말 그대로 하나의 객이 되어 주체인 자연이 그 숨결을 나누어주는 대로 느낄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문득, 제주도와 울릉도를 다녀오면서 느낄 수 있었던 아쉬움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관광의 편의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희생된 자연의 슬픈 모습 때문이었다. 대표적으로 기억되는 것은 제주도의 중문해변과 울릉도의 풍혈이었는데, 70년 대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간 곳 없고 인위적인 시설물들로 가득차서 자연의 장엄한 신비 따위는 느낄 수 없었다.
미국에는 먼 친척관계인 두 명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있다. 유일한 4선 대통령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그들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미국을 2차 세계대전의 주역으로 만듦으로써 오늘날의 초강대국 미국의 근간을 이루어낸 대통령이다. 하지만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라함 링컨 등 위대한 대통령들과 함께 러시모어산에 암각 된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아니라 시어도어 루스벨트이다. 다소 고집세고 오만했던 그는 어떤 업적으로 그곳에 얼굴을 남겼을까?
그는 미국 최초로 국립공원법을 제정하고 선포한 대통령이다. 정치ㆍ경제적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러시모어산에 얼굴을 남길만 한 위대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태즈메이니아와 미국의 국립공원들과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불편하다는 것, 즉 사람이 아니라 자연의 편에서 관리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관광객이 많아도 그들은 왕복 2차선 도로를 확장하지 않는다. 관광객의 편의만을 위해 도로를 만들지도 않는다. 편의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이쯤에서 우리의 관광정책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람의 편이 아니라 자연의 편이 되어야 한다. 요즘 지자체마다 '한탄강 주상절리길'같은 잔교 형식의 산책로나 출렁다리, 케이블 카 등을 신설하며 관광객 유치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짧은 호흡으로는 사람의 편의성을 높이는 것이 관광 수익의 극대화를 만들어 줄지는 모르겠으나, 긴 호흡으로 볼 때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정책이라 할 수 있겠다. 더 늦기 전에 되도록이면 원모습을 복원시키고, 수익성 창출보다는 보전을 위한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자연의 가장 위험한 적은 인간이다. 아울러 자연은 우리만의 유산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고귀한 유산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