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 성혈사 나한전/ 권택용
충절의 고장
영주 순흥
물겹겹 산첩첩
성혈사를 찾았다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들을 데리고 추녀끝에 앉아
여닫이 문에 새겨진
보물을 감상한다
세월은 바랬지만
바랜 세월만큼 보배로운 조각
생노병사
사바세계
무병장수
인간욕망
만다라화로 피어나
중생들을 제도하고 있다
믿음 수행이면
피안으로 가는
진리의 언덕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는
깨달음인 연기의
이치를
아무래도 이번생엔 도달하지 못할것 같아 성혈사 나한전 문만 바라보고 있다
내마음의 꽃밭/ 권택용
어느날 문득
천사가 내게
다가왔다
그동안
악에 물들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삶에 대한
보답일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
내마음꽃밭엔
꽃중의 꽃이 피어있다
내마음꽃밭엔
화무십일홍
말은 존재치 않는다
내영혼 꽃밭에도
꽃중의 꽃
피우련다
매미소리/ 권택용
왜 하필 내 눈앞에서 죽었나?
소리를 뱃속에 감은채 죽은 매미
맴맴맴맴
배를 씰룩이며
암컷을 부르던 정열이
아파트 숲길에 널부러져 있다
짧디짧은 삶에
한탄이 묻었는지
배를 뒤집고 누워있다
여름이면 응당 들리는
뜻없는 소리인가 했더니 그것은 나의 오류였나보다
삼경에도
애타게 울어대는
매미 심정을 몰랐다
매미들에게
부탁하고픈 말
홀로된 여인의
규방 근처 나무엔
앉지 말기를
‘충절의 고장/ 영주 순흥’으로 가서 ‘물겹겹 산첩첩’따라 오르다보면 「순흥 성혈사 나한전」에 도착한다. 바위는 아무 말 없었지만 역사는 바위로 된 굴속에서 흐르고 있었다. 지금도 오르는 길에 있는 굴속에서 성인이 나와 성혈사라 이름 지어졌다. 몇백 년 동안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오래된 창살은 예스러운 풍취를 지닌 역사를 자랑하지 않았다. 앞면 3칸 옆면 1칸 그리고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는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곳이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노병사’와 부처의 진리로 착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사바세계’ 그리고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며 살아 숨쉬는 ‘무병장수’와 ‘인간욕망’이 상존해 가며 돌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다. 그래서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간 욕망의 법칙」에서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로버트 그린은 ‘앞날을 내다보고 끈기 있는 태도로 계획을 실현하는 사람은 신과 유사한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나한전의 백미는 꽃살문, 화엄경의 초전지답게 꽃으로 장엄한 세계를 눈으로 보여주고 있다. 바다의 모든 사물이 도장 찍듯 나타나는 해인삼매와 같이 연못속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비치는 꽃살문을 통해 ‘만다라화로 피어나/ 중생들을 제도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믿음 수행이면’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열반안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이상적 경지를 묵묵히 품어왔지만 ‘진리의 언덕에 도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형성되고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오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수정될 수도 있지만 인연에 의해 소멸되는 ‘깨달음인 연기의/ 이치를/ 아무래도 이번생엔 도달하지 못할 것 같아/ 나한전 문만 바라보고 있다’라고 마무리 한다. 현재 나의 숙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인 까닭에 시의 중심에는 우주의 진리, 대우주, 부처, 공왕불 앞에서도 나의 깨달음으로 오지 않는다는 만물의 허상이 들어있다. 깨달음을 갈망한다는 것은 익숙한 일상에 균열을 내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외부의 도움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서 스스로를 분별하고 선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음 시 「내마음의 꽃밭」을 들여다보자. 꽃밭에는 모둠꽃밭 살피꽃밭 올림꽃밭이 있다, 정답 없는 삶에 지쳐 막막하고 버거웠던 삶, ‘악에 물들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삶에 대한 보답일까? 라며 ’천사가 내게 다가‘온 것에 대해 시인은 감동수염뿌리를 빗어내리고 있다. 그것은 마음속 깊고 고요한 곳에는 늘 알 수 없는 불안의 강물이, 두려움이 쉴새없이 넘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받지 않으려 애써 외면하면서 걸어온 시간이 겹겹이 쌓일 때 비로소 깊은 뿌리가 되어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억지로 당기면 더 엉켜버리는 실타래가 될까봐 감정도 고민도 가만히 내려 놓고 마음은 꽃필 준비를 하고 있다. ‘내마음꽃밭엔 꽃중의 꽃이’ 필 수밖에 없는 것은 바짝 말라 초라해진 찻잎도 뜨거운 물을 만나면 자신만의 깊은 향기를 내뿜기 때문이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지만 ‘화무십일홍/ 말은 존재치 않는다’는 말 속에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으려는 생명에 대한 깊은 신뢰가 들어있다. 나는 더 오래 피겠다는 각오가 또 집념이 작품의 바닥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 키우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로 들리지만 저마다 자기만의 색깔로 아름답게 피워 마음까지 환하게 밝혀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신적 기둥일 것이다.
한송이 한송이 눈맞추며 걷는 길이 바로 나만의 꽃길이 된다. 초승달의 빛나는 부분이 작아 나의 모습도 작아보이지만, 보이지않는 둥글고 커다란 진짜 모습이 행복 한 소쿠리로 빛날 시간은 점점 다가온다. 가득차지 않아도 우리는 온전한 우주이기 때문에 ‘내영혼 꽃밭에도/ 꽃중의 꽃/ 피우’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풀밭은 세월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장장익선長長益善이지만 꽃밭은 한해살이다. 봄에 뿌리고 겨울이 오기전 씨를 받아 이듬해 봄에 또 뿌리면서 시간의 흐름과 기다림 그리고 여유로움을 배우게 된다. 같은 꽃이라도 해마다 자태가 다르므로 올해의 꽃들은 어떤 풍경이려나 성장을 기다려본다. 왜냐하면 꽃을 피우고 싱그러웠다가 뚝뚝 떨어지는 그 자리마다 새까맣고 단단한 씨앗인 결과가 맺히기 때문이다.
다음 시 「매미소리」를 들으러 가보자. 한국에는 참매미 쓰름매미등 15종이 자생하고 있지만 장수풍뎅이나 시슴벌레처럼 비행능력은 썩 좋지 않은 편이다. 땅속 애벌레 시절은 보통 7년 정도 보내고 나서야 고작 2주~4주 사는 성충이 되기에 ‘짧디짧은 삶에/ 한탄이 묻었는지/ 배를 뒤집고 누워있다’며 사물을 설명하기보다 그 안에 숨어 있는 생명의 떨림을 말하고 있다. 쩌렁쩌렁한 소리로 보통 여름 한 철 8월까지 살지만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해 10월까지 살아있는 경우도 생긴다.
암컷은 나무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다가 포식자에게 잡히면 귀가 터질정도로 비명을 질러대는 수컷과 달리 암컷은 소리도 못내고 그저 발버둥만 친다. 그래서 암컷은 벙어리 매미라고 한다. ‘소리를 뱃속에 감은채 죽’는다는 것은 ‘한탄이 묻’어 있음을 뜻하고, ‘애타게 울어대는/ 매미 심정을 몰랐’지만 ‘왜 하필 내 눈앞에서 죽’었는지 안타깝게 상호작용하는 음양의 원리는 반대성질로 균형을 맞춘다는 것으로 다가온다. 3연의 ‘암컷을 부르던 정열’은 7연의 ‘홀로된 여인의 규방 근처’로 옮겨와 ‘애타게 울’지 말아달라며 ‘매미들에게 부탁’하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7월에 나타나 9월 초가을까지 방충망에 달라붙어 울고 있는 유지매미, 뒷다리 들어올리며 내는 울음소리가 기름이 들끓는 듯 들리니 홀로된 여인의 애간장을 태울‘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 눈앞에서 죽‘은 눈빛과 침묵 그리고 달빛이 품은 시간을 오래 응시하며 얻은 상상력으로 ‘규방’까지 엮어나갈 수 있는 실력은 은유의 달인만이 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매미소리만을 주제로 하여 무려 30절구에 달하는 초대형 연작시 「선음삼십절구」를 남긴 정약용 선생은 청아한 울음소리를 운율이 춤추는 시로 표현하였다. 자연의 미물을 가장 치열한 탐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권택용 시인도 하늘 아래 가장 작은 것 속에서 우주의 법칙을 읽어내려는 실학자의 정신을 계승하여 쓴 환경시가 생명의 존엄으로 빛을 발한다. 사물에 집중해서 탐구한 결과 음향의 아름다움을 넘어 생태의 신비로 깊숙이 파고 들며 내놓은 세 편의 시는 장기적인 관찰의 결정체였던 것이다.
# 권택용 시인 약력
권잭용 시인
* 경북 문경 출생
* 남과 다른 시쓰기 동인
* 성균관대학교 3년 중퇴 한국 방송 통신대학교 국문과 졸업
# 이서빈 시인 약력
이서빈 시인
■ 경북 영주 출생
■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 시집 : 「달의 이동 경로」 「함께, 울컥」 「올챙이를 산란하는 비요일」
「창의력 사전」 外 다수
■ 한국 문인 협회 인성교육 개발위원
■ 한국 펜클럽 회원
■ 시인뉴스. 모던포엠. 현대시문학 편집위원
■ 대하소설 「소백산맥」 영주신문 연재하고 17권 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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