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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7-24 19:48

  • 박스기사 > 연재-이서빈 시인

​​​​​​​우묵한 곳들/ 김경숙

이서빈이 읽은 감성시

기사입력 2026-07-2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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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묵한 곳들/ 김경숙

 

찾아보면 몸엔 우묵한 곳이 몇 군데 있다

 

넘칠 듯 넘칠 듯 위태로웠던 일들이며 참았던 울분들이 아픈 깊이로 지금도 여차하면 넘치거나 졸아들겠다는 결심 같은 것으로 고여 있다 그곳은 내가 한동안 웅크리고 있던 흔적, 한없이 가라앉았던 물속같이 간신히 숨을 참았던 곳이다 나를 끌고 내 안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기어이 익사하고 말겠다는 다짐은 다 써먹고 이젠 없지만, 그때 배운 영법(泳法)은 괴기한 자세로 여전히 나를 지키고 있다 여차하면 나를 살리는 일이 아니라 나를 죽이는 허우적거림으로 기어이 소진되겠다는 각오 같다 결심은 대부분 제 무게를 딛고 일어서는 것들이고 체념은 그보다 몇 배나 더 무겁다

 

이젠 체념도 결심도 다 녹슬어 있다

잘 생각해 보면 누구나

자신의 모진 목숨 하나 발목 잡거나 잠길 수 있는

우묵한 육신이 있다

 

웅크리고 있기 딱 알맞은 크기다

 

 

 

헝클어진 곳/ 김경숙

 

털이 많은 개를 쓰다듬다가

왜 여름용 털과 겨울용 털이 따로 없을까

겨울과 여름이 같은 두께의 털로

추위와 더위를 견딜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내 몸에는 내부의 털과 외부의 털이 있음을 안다

 

내 몸의 털이란

헝클어진 곳들이다

가지런하지 않아서 특별히 내보이고 싶지 않은 곳

그곳에 부끄러운 것들 다 숨어 있다

 

온몸이 헝클어진 개를 찬찬히 빗질하다가

이렇게 가지런해지는 몸이 있다면

가지런해질 수만 있다면

어느 까탈스러운 주인을 만나서라도

애완으로 한 생을 살아도 좋지 않을까

그저, 눈치만 살피다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몇 마디 말만 익혀서

귀를 쫑긋거리며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이미 헝클어지고

돼먹지 못한 곳의

주인인지 끄나풀인지도 모르고

여름과 겨울을 혼용하는 털을 숨겨놓고

겨울에서 여름까지

혹은 여름에서 겨울까지

같은 체온으로 견디는 것이다

 

 

 

나무라는 말/ 김경숙

 

오늘은 근처 숲에 가서

적어도 몇백 년 동안 이동하지 않을

제자리 하나가 자라는 것을 보고 왔다

 

나무라는 말엔, 어떤 힘도

옮기지 못할 고정된 제자리 하나가 들어있다

 

숲은 모두 제자리를 지키는 곳이라서

나는 발밑이 바스락거리는 존재로

비탈과 등성이를 돌아다녔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놓아야 할 일들과

양쪽 중 한 곳을 외쳐야 할 날들이

숲에서는 한낱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절로 알게 되지만,

나는 숲 밖의 사람이라서

단 하루도 제자리에 서 있는 일에

사용할 시간이 없다

 

사실 숲의 나무들은 모두

알람을 가진 시계들이다

 

가장 믿을만한 존재들은 다 고정된 곳이므로

변하지 않는 그곳의 그것들,

그런 제자리들에게 몇백 년을 맡겨놓으면

곁에 오솔길 하나를 두고

만나는 길과 떠나가는 길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나무 곁에

어떤 이는 지난 약속을 찾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먼 훗날을 맡겨놓기도 한다

 

 

 

김경숙 시인은 영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된 실력있는 시인 답게 우묵한 신체를 인간 존재의 심연으로 바꾸고 있다. ‘찾아보면 몸엔 우묵한 곳이 몇 군데 있다라는 문장은 해부학적 설명이 아니라 몸은 살아온 시간의 기록이라는 선언이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인간은 몸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세계를 경험한다고 한 말을 가장 잘 증명해 시로 옮겼다. 넘칠 듯 넘칠 듯 위태로웠던 일들이며 참았던 울분들이 아픈 깊이로 지금도 여차하면 넘치거나 졸아들겠다는 결심 같은 것으로 고여 있다라며 몸의 일부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살아오며 감당한 시간과 상처가 육체에 남긴 존재론적 흔적으로 읽히게 한다.

기어이 익사하고 말겠다는 다짐은 다 써먹고 이젠 없지만, 그때 배운 영법은 괴기한 자세로 여전히 나를 지키고 있다여기서 영법은 단순히 헤엄치는 기술이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 배운 기술이, 평생 죽음의 자세를 기억하게 만든다는 트라우마이다. 살기 위해 만든 방어기제가 나중에는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이것은 현대 심리철학과 실존철학이 말하는 인간의 모순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심은 대부분 제 무게를 딛고 일어서는 것들이고 체념은 그보다 몇 배나 더 무겁다라는 구절이 시 전체의 철학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결심은 강하고 체념은 약하다고 생각하지만 시인은 체념은 포기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다 써본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든 무게로 뒤집어 말한다. 니체의 희망은 아직 미래가 있지만, 체념은 미래마저 짊어진 현재다.’라고 한 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쓴 시다. 그리고 이젠 체념도 결심도 다 녹슬어 있다라고 아주 뛰어난 표현으로 마무리한다. 인간은 결국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녹슨 감정으로 늙음의 철학으로 웅크리고 있기 딱 알맞은 크기다로 시를 완성한다.

우묵한 곳은 태어나기 전 자궁이기도 하고 죽어서 가는 무덤이기도 하다.

인간은 가장 힘들 때 세상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자신 안으로 웅크린다.

그 우묵함은 절망의 공간인 동시에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공간이다.

시인은 상처를 비극으로 과장하지도 않고, 극복 서사로 쉽게 봉합하지도 않는다. 대신 인간의 몸 자체를 삶의 퇴적층으로 바라보며, 몸의 움푹한 자리들을 기억·체념·생존의 흔적으로 읽어낸다.

 

헝클어진 곳은 질서와 길들여짐, 인간의 자유와 존재의 불완전성을 묻고 있는 시다.

왜 여름용 털과 겨울용 털이 따로 없을까이 질문은 사실 개를 묻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상황에 따라 바꾸는 것, 그러니까 인간은 왜 그렇게 많은 가면으로 얼굴을 바꾸고, 계절에 따라 감정을 바꾸고, 관계에 따라 언어를 바꾸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내 몸의 털이란/ 헝클어진 곳들이다라는 구절은 가지런하지 않아서
특별히 내보이고 싶지 않은 곳이다. 인간은 정리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나 자신의 공간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털을 상처와 수치로 번역한 뛰어난 비유이자 상상력이다.

헝클어진 개를 찬찬히 빗질하다가라는 구절은 문명을 상징한다. 빗질은 질서를 가지런히 하는 행위이고 교육이고 사회화며 훈육이다. 몸이 정돈될수록 권력이 다루기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어느 까탈스러운 주인을 만나서라도/ 애완으로 한 생을 살아도 좋지 않을까라는 것에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떠도르게 한다. 여기서 애완은 개가 아니라 현대인의 모이다.

회사, 조직, SNS, 자본...우리는 누군가의 허락 속에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개 같은 존재가 된다. 인간은 자유보다 안전한 복종을 선택하기도 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는 문구다.

나는 이미 헝클어지고결국 인간은 헝클어진존재라고 하지만 여기서 헝클어짐은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다움이다. 시인은 헝클어진 시간만이 아직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완전히 정리된 사람은 이미 누군가의 애완이기 때문이다.

주인인지 끄나풀인지도 모르고라는 문구에서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 아니면 사회가 조종하는 노예인가 라는 질문으로 현대사회를 꼬집고 있다.

끄나풀이란 단어는 주체와 객체가 동시에 무너지게 하는 기발한 단어 사용이다.

여름과 겨울을 혼용하는 털을 숨겨놓고/ 같은 체온으로 견디는 것이다에서

체온은 생리적 온도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 의지, 생명력을 말한다. 계절은 변하지만 인간은 같은 체온으로 살아내기 때문이다.

 

나무라는 말은 소재는 나무지만 주제는 제자리다. 시간과 존재, 그리고 인간 문명의 속도를 정면으로 성찰하고 있다.

철학은 언제나 말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한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말을 했듯 나무라는 단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해체하는 시다.

 

첫 연 제자리 하나가 자라는 것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날아다니는 문구다.

자라는 것은 나무인데 여기서는 제자리가 자란다고 사고를 거꾸로 뒤집는다.

나무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장소가 수백 년 동안 존재를 축적해 간다고 한다. 이런 조건으로 본다면 나무는 시간을 먹고 자라는 존재가 아니라

장소를 키우는 존재가 되는 발상전한을 한 것이다. 아주 새롭고 낯선 문구이다.

나무라는 말엔, 어떤 힘도/ 옮기지 못할 고정된 제자리 하나가 들어있다

인간은 이동하지만 존재는 고정된다 숲은 모두 제자리를 지킨다

인간은 늘 이동하지만, 나무는 어떤 힘으로도 움직이지 못할 존재의 기준점이 된다.

양쪽 중 한 곳을 외쳐야 할 날들이/ 숲에서는 한낱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 구절은 인간을 초월하는 말이다.

숲에는 좌도 우도 없고 승자도 패자도 없다, 나무는 편을 들지 않는다.

숲은 인간의 편 가르기를 힌닡 웃음거리 정도로 바라본다.

나는 숲 밖의 사람이라서는 현대문명을 규정하며 숲은 자연이 아니라 존재 방식, 그러니까 시인은 이미 숲 밖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슬퍼한다.

나무들은 모두/ 알람을 가진 시계들이다라는 구절은 이 시의 백미다. 보통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지만 나무는 계절을 알려준다.

여기서 나무는 길과 떠나가는 길의 이정표가 되기도 힌다.

어린 시절 학교 앞 은행나무, 고향 느티나무가 우리 삶의 좌표가 되어 주었다. ‘어떤 이는 지난 약속을 찾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먼 훗날을 맡겨놓기도 한다

이 마지막 문구는 역사, 철학, 인문학을 총괄한 명제로 읽힐 만큼 깊은 울림을 준다.

 

 

 

*김경숙 시인 약력

김경숙 시인

*영주신문신춘문예당선

*모던포엠》 《웹진 시인광장편집위원

*한국바다문학상. 해양문학상. 부산문학상 본상.

*세종문화예술상대상. 모던포엠문학상. 부산시단작품상.

*14회 천강문학상대상

*저 서 :얼룩을 읽다』『빗소리 시청료』『먼지력

*) 야생화연구소장. 카페대동숲 대표.

 

# 이서빈 시인 약력

이서빈 시인

경북 영주 출생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달의 이동 경로」「함께, 울컥」「올챙이를 산란하는 비요일

창의력 사전다수

한국 문인 협회 인성교육 개발위원

한국 펜클럽 회원

시인뉴스. 모던포엠. 스토리문학 편집위원

소설: 대하소설 소백산맥17, 영주신문 연재 출간

주소: 서울시 중랑구 겸재로 5487, 1101호 우)02208

이메일: happyjy8901@hanmail.net

 

권대현 (youngju@new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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