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입술/ 글빛나
깜깜한 어둠속에서 암담함을 갉아먹으며
희망을 찾고 있는데
느닷없는 입김을 불어주는 입술
오래된 습관으로
어둠속에서 뒤척이는 걸
눈치라도 챈 걸까?
언제든 땅 밖으로 밀어내야 할 문장을 묻어두고
익숙함의 질감에 싸여
빛을 뚫을 시도도 않고
칭얼거리다
서성거리다
새싹이란 문자도 몰랐던 시간
얼마나 달강달강한 그늘을 배회했던가
킁얼킁얼 우는 계절
어느새 치맛자락 휘감는 휘파람향기
빗방울
봄잎처럼 파들거리는 창을 닫고
칭칭 동여맨 옷고름 만지작거리다
세상에서 가장 맛난
입술에 우후죽순 돋아나는 푸르름
술 술 술
마술에 빠져
파르라니 떠는
입술
가득찬 공空/ 글빛나
태초의 빛 싹 트니 천지가 가득찬다
동글동글 또다른 우주들
열매로 태어나
저, 열매 얼마나 부풀어오르면
공을 채울까?
텅 빈 질문에
가득찬 대답을 찾아 좁쌀만한 열매에게 물어본다
왜!
왜! 살아가는 것인가?
삶은 홀로 설 수 없는 불완전 동사
삶 앞에 특정 동사가 위치해야 살아갈 수 있다
가득차고 비우고 늘 이렇게 반복해야 하는 동사를 지울 수 없다
초록문장의 진열은
관찰력과 상상력을 붙여
꽉찬 계절을
공空으로 비우는 일
희극과 비극
저울질 하는 뒷골목
서두르지도
움켜쥐지도 팔꿈치가 없어
흔들리지도 않는 오독오독한 붉은열매들
공空 가득한
우주를 보이고 싶다면
공空처럼 살면 되지 않겠나
쌉쌀한 이름/ 글빛나
그늘 깔리는 소리 파리하게 흔들려요
몇 천 미터 땅을 파고 누워야만
주술적 공간이라 할까요?
눈을 감아 어두운 것이 아니라
검은 능선을 타고 내려온 밤의 배가 불룩해진 것이라고
아무도 맛본 적 없는 포도주 같은 바람이 불고
밤 넝쿨이 시곗바늘처럼 균일해지면
사기만 먹고 사는 사기꾼들이
새끼를 거느리고
뺏으려는 자
지키려는 자를 분리수거함에 넣고 있어요
화면 밖으로 밀려난
불경스런 소식들
저항조차 끌려가는 밤의 멱살
발뒤꿈치가 싸늘해 보여요
밤의 교란으로 빛이 파괴돼
회색눈물 흘리는 절망나무
미친 개불알꽃 같이 흔들리는 한恨
입속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시곗바늘이 대재앙을 재촉하며 울고 있어요
알 한 알갱이씩 꺼내 인광의 깃털을 달아줄까요?
행과 연 잘 조율하는 國父의 태극기
저토록 완연한 어둠 속 쌉쌀함은 누구의 몫일까요?
사계절의 하나인 봄은 존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생명선이다. 나울나울 낭만을 가꾸는「봄의 입술」을 만나러 가보자. 황사나 미세먼지가 많아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암담함을 갉아먹’는 시간은 더없이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지만 그녀의 입술을 매만지다 온 달콤한 바람이 행과 행 사이 건너오기를 기다렸다가 ‘입김을 불어’ 넣어 준다. ‘어둠속에서 뒤척이’는 메뚜기도 한철이듯이 너도 한 철 나도 한 철, 우리 모두 다 한 철뿐이다. 봄은 여름에게 여름은 가을에게 가을은 겨울에게, 만물이 소생할 수 있게 씨눈이 되어주고 있다. 한 해의 마무리 겨울이 되면 서서히 주름져가지만, 그때마다 봄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 젊음을, 청춘을 되찾아 준다.
비가 오고 나면 싸늘해지면서 꽃샘추위가 온다. 아침 눈썹이 움츠러들고 피려던 칸나 날개가 잠시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꽃은 멈춘 적이 없다. ‘칭얼거리다/ 서성거리’는 시간은 겉으로 보면 방해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결실을 돕는 시간이었다. ‘달강달강한 그늘을 배회했던’ 시간이 상냥한 기다림에, 뿌리는 깊어지고 줄기는 더 단단해지면서 비로소 흔들림 없이 제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할 때 다시 어려움 찾아와 ‘킁얼킁얼 우는 계절’이 지나고 나면, 조금 늦어질 수 있지만 한 번 피고 나면 오히려 더 오래가기 때문에 ‘치맛자락 휘감는 휘파람향기’가 난다. ‘칭칭 동여’맨 시간은 모천회귀의 시간, ‘세상에서 가장 맛난/ 입술’ 촉촉한 매력에 ‘우후죽순 돋아’나게 한 것이다.
‘술 술 술/ 마술에 빠져/ 파르라니 떠는/ 입술’은 예쁜 색채로 그 짧은 순간들을 행복한 순간으로 채색해 놓았던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많은 포유류는 다른 동물들보다도 도드라지게 발달한 입술을 가지고 있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낼 수가 있다. 마누엘 푸이그의「붉은 입술」에서는 독자들의 원시적인 취향을 가지고 놀았으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인간사회의 작은 세상을 갉아먹는 깊은 위선에 대한 치명적인 비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던 작가였다고 할 수가 있다. 봄은 모두에게 똑같이 오지만 받아들이는 감정의 크기는 저마다 다 다르다.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봄에게 먼저 다가가 손잡고 있어야「봄의 입술」이란 시를 쓸 수가 있다. 계절과 인간은 서로 간의 장점이 목마르지 않게 상호신뢰로 이야기를 펼쳐나가야지만 환경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시「가득찬 공空」속으로 들어가 보자. 공空은 ‘공허하다 부질없다’란 뜻이 있다.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깨달은 사람도 없고 모든 욕심을 내려놓은 사람도 없으니 공허할 수밖에 없다. 동글동글 태어난 열매는 태초의 빛이지만 고정된 실체가 없는 삶은 부질없는 질문에 해당하기도 하고 또 언제든지 바뀔 수가 있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중첩상태처럼 이것과 저것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상황과 조건에 따라 한가지 현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절을 하고 시주를 하고 기도를 해도 삶이 진전되지 않는 이유는 영원하지 않다는 무상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공이 같은 이유에서 오기 때문이다. ‘왜! 살아가는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 ‘홀로 설 수 없’는 ‘불완전 동사’는 특정 동사가 되어야 하고, 가득 차면 비움을 ‘반복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공의 개념을 습득하면 진리 속에서 자유롭고 완벽하게 살 수 있다는 성찰을 주는 깨우침은 진리가 되는 동시에 경전이 될 수 있다. 그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주어진 현재 삶에 집중해야만 ‘관찰력과 상상력을 붙여 꽉 찬 계절을 공空으로 비’울 수 있게 됨을 말한다. 내 뜻대로만 고집하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일,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났느냐에 따라 삶의 목표가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희극과 비극’이 한 몸처럼 얽혀있다는 점이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은 가까이 보면 비극 같지만 한 발짝 떨어져 보면 어딘가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다. 지금 당장은 코끼리울음이 들릴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맞이꽃이 난초롱하게 피어있기에 체홉은 ‘일상의 비극과 희극에서 우리에게 거리를 두는 법’을 가르친다. 우주 삼라만상은 전부 이 공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고 비어있으나 둘이고 전체이기에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을 아우른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 시「쌉쌀한 이름」을 달곰쌉쌀하게 불러보자. 초자연적 위협에 대응하는 ‘주술적 공간’은 경회루 연못에 있는 구리용의 형태와 배치방식을 보면 조선 시대의 주술 사상과 풍수신앙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길을 잃은 어둠이 깊어질수록 검은 능선은 굴복의 흔적이 아니라 모진 세월을 등에 업고 인내해온 훈장이기에 ‘밤의 배가 불룩해’지며 생의 깊이를 갈무리한다. ‘아무도 맛본 적 없는 포도주’는 세월의 강물이 되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바람이 된다. 온도가 휘두르면 과실 향을 파괴하듯 바람도 편견을 늘어뜨리면 자연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비바람을 딛고 선 이 땅이 전쟁의 현장이 될지? 독립의 광장이 될지? 내 배를 불리기 위해 남의 땅을 가로챘고 다른 쪽에서는 타인의 자유를 위해 위험 무릅쓰고 손을 내밀었다. 인간의 가장 추악한 면과 고귀한 면을 구분하기 위해 ‘분리수거함’이 필요한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총성은 민족의 정의였다.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 뒤에도 민족의 시련은 끝나지 않고 한일합방이라는 이름의 치욕으로 나라를 허무하게 바쳤으니 ‘화면 밖으로 밀려난 불경스런 소식들’이 계속 들려왔다. 압박과 암살 위협 속에서도 자유를 지키기 위해 ‘회색눈물 흘리는 절망나무’였지만 한숨을 다잡으며 견디어 왔기에 후손들이 희망나무를 움켜잡으며 살아가고 있다
분열의 기운이 감돌면서 일본은 이름마저 빼앗고 말았다. ‘미친 개불알꽃 같이 흔들리는 한恨’으로 조선 민중의 정신이 말라갈 때 ‘시곗바늘이 대재앙을 재촉하며 울’게 만든 6.25, 하지만 국부는 무너진 폐허 위에서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면서 ‘행과 연 잘 조율하’였다. ‘國父의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국기이다. 흰색 배경으로 중앙에 빨간색과 파란색의 태극을, 네 귀퉁이에는 팔괘 중 상하가 대칭되는 사괘인 건곤감리를 그렸다. 이는 음양 화합을 상징한다. ‘참혹한 역경을 딛고 세계 최강국으로 성장하는 대한민국의 슬프도록 황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소백산맥」은 이서빈 시인이 집필한 17권의 대하소설이다. 세계로 나아가는 그 스승의 제자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시인은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으로 소설 속에서 시를 꺼내 잘 엮어냈음을 알 수가 있다.
# 글빛나 시인 약력
* 강원도 원주 출생
* 남과 다른 시 쓰기 동인
* 신사임당 백일장 장원
# 이서빈 시인 약력
■경북 영주 출생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달의 이동 경로」「함께, 울컥」「올챙이를 산란하는 비요일」
「창의력 사전」 外 다수
■한국 문인 협회 인성교육 개발위원
■한국 펜클럽 회원
■시인뉴스. 모던포엠. 스토리문학 편집위원
■소설: 대하소설 「소백산맥」 17권, 영주신문 연재 출간
■주소: 서울시 중랑구 겸재로 54길 87, 1층 101호 우)0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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