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하 수상하니 순서를 잃어버린 꽃들의 난장이 펼쳐진다. 매화가 아직 남았는데 개나리와 벚꽃이 피어나고 목련, 산수유, 진달래까지 난장을 거드는 봄. 여름과 겨울은 길어지고 봄, 가을은 짧아진 세월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요즈음이다. 이러다가 우리의 후세들은 사계 四季 없이 살게 되는 건 아닐까?
누굴 탓하랴... 지난 한 세기, 풍요와 안락 속에서 지구를 괴롭혀 온 우리들의 어리석음 때문인 것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을 명심하고, 이제부터라도 지구 환경에 대한 각성을 실천으로 옮겨야 할 때이다.
꽃샘추위가 감기를 몰고 왔다. 기관지가 간지럽기 시작하더니 기침이 나고 가래가 들끓는다. 서둘러 병원에 다녀왔지만, 쉽게 나을 것 같지 않다. 일교차 심한 날씨를 생각하지 않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봄을 만끽하려 한 업보이기도 하겠다.
평생 동안 감기에 걸려 가래가 들끓은 때면 반드시 기억하게 되는 유년 시절의 추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나... 어머니가 감기에 걸려 고생하셨던 것 같다. 기침을 하시다가 짙은 회색 가래를 뱉어내셨고, 그 곁에 있던 나는 생각도 없이 "아이 더러워."라는 말을 뱉어낸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으셨고, 아버지가 그 가래를 닦아주신다. 아버지는 과묵한 성격이시라 자식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으셨고, 웬만한 일로는 야단치는 일도 없으셨다. 그런 아버지가 실망스러운 어투로 혼잣말처럼 나무라신다. "엄마가 아픈데 그걸 더럽다고 하는 자식이 어딨나."라고. 그 한마디가 내게는 그 어떤 매보다도 아프게 느껴졌나 보다.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가며 그 말씀이 자꾸 되살아나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곤 했으니까.
삼 년 터울로 내 곁을 떠나신 부모님. 마지막 십여 년은 부끄럽지만 내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해 모셨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효도에 대한 내 생각은 '부모가 한만큼 자식이 갚아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난 내 자식들에게 내 부모님이 내게 해주신 것만큼의 사랑을 베풀지 못했기에 "난 아빠처럼 할 수 없을 것 같아."라는 아들의 말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나 또한 받은 만큼, 아니 받은 것의 반의반만큼도 못 갚아드렸지만, 그나마 효도의 흉내라도 내며 살 수 있었던 것은, 무심히 흘리신 아버지의 그 한 마디 때문이었다. 가끔은 부모의 가벼운 말 한마디가 철없는 아이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인생 지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부모로 사는 일,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야...
하늘은 공평하다 / 황윤현
울 어머니 / 1934년 함경남도 産
계단 내려가시며 무릎 아프다 하신다 / 걱정 마, 엄마가 나 업어준 만큼 내가 업어드릴 게 / 피식 웃으시며 '됐다' 하신다
목욕시켜 드린다 / 훈장같이 새겨진 튼 배를 본다 / 이 안에서 내가 열 달이나 있었네! 무거웠겠다 / 배시시 웃어 주신다
나 낳고 다 허물어졌다며 약해진 / 이빨로 고생하신다 / 내가 뱃속에서 엄마 칼슘 다 뺏어 먹었나 봐 / 그러니 난 통뼈고 엄만 이렇게 됐지 / 아련한 눈빛으로 / 우량아상을 타던 내 어린 모습을 회상하신다
머리 감겨드리는데, 샴푸 비벼드리는데 / 숱도 없이 손가락 사이로 뒤엉키는 머리카락 / 삼단 같던 머리카락을 앗아간 야속한 세월
지금도 헤어질 때면 / '돈 있니?' 하신다 / 응 난 많아, 이제는 엄마 위해서 써요 / 그래도 손에 쥐여주신다
어찌 보면 하늘은 공평하다 / 아가는 어른이 되고 / 부모는 다시 아가가 되어간다 / 받은 거 다 돌려드리리 / 나 사람 되라고 애쓰신 이십 년 / 적어도 그 세월만큼은 돌려드리리
어머니, 업어드릴게요 / 목욕시켜 드리고, 밥 먹여 드리고 / 진자리, 마른자리 다 가려드릴게요
울 어머니가 너무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