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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7-2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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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날 때를 아는 사람은 아름답다

황윤현

기사입력 2026-04-06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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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함께 떠오르는 시가 있다. 이병기 시인의 낙화 落花라는 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 얼마나 아름다운가 (중략)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는 아버지를 존경한다. 아버지는 선비 같은 삶의 자세 그리고 고 박태준 초대 회장의 뒤를 이어 선공후사 先公後私의 기업 이념을 정립함으로써 POSCO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기업가 정신으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한 생을 마감하셨다. 하지만 자식으로서 가장 존경스러웠던 모습은 어떤 자리에서 물러날 때 보여주셨던 초연한 자세였다.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 경영자의 공과는 그가 물러난 후 최소한 오 년의 세월이 지나야 알 수 있다.". 아버지는 물러나실 때 당신의 역할이 끝났음을 분명히 하셨고, 뒤 이은 후배들의 역할을 묵묵히 응원하셨다. 항상 그 뒷모습이 아름다우셨던 아버지.
나 또한 뒷모습이 아름답기를 갈망하기에, 늘 처신에 주의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아버지의 삶을 보고 자란 까닭도 있겠지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어머니의 말씀, "사람은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중요하다."는 그 말씀은 늘 나의 진퇴를 결정하는 최우선의 고려사항이 된다.

건축을 하던 내가 64살 되던 2019년에 늦깎이 시 등단을 하고 그 후 다시 문창과에 편입하여 평론과 요즘 떠오르는 디카시까지 등단을 이루었지만, 응모란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응모가 있었는데, 2018년 서울대 분당 병원 중환자실의 어머니를 돌보다가 병실 입구에 붙어있는 전국 중환자실 수기 공모포스터를 보고 응모하여 대상과 함께 200만 원의 상금을 거머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응모이다.

시를 쓰고 발표하는 데는 표현 욕구인정 욕구가 함께 작동한다. 응모와 수상은 인정 욕구의 가장 확실한 보상이라 하겠다. 이왕에 문학의 길에 발을 담갔는데 나라고 그런 욕구가 없겠는가? 하지만 응모와 수상으로 영광을 누리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기회는 젊은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동안 발표한 시들을 대상으로 선정한 세종문화예술대상을 수상하고도 500만 원의 상금 전액에 사재를 더하여 아버지의 성함을 딴 황경노 문학상을 제정함으로써, 후배 시인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던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에 십분 동감한다. 하지만 그 자신감을 표현 욕구에 묶어 두고 싶다. 다시 태어난다면 일찌감치 문학의 길로 뛰어들어 모든 상을 휩쓸어 보고 싶다만.

만개한 벚꽃을 보며 다시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아버지는 이병기 시인의 낙화를 알고 계셨을까?

 

/ 황윤현


방문을 열자 덩그러니 비어있는 안락의자
화장실을 기웃거린다
아버지, 저 왔어요
평소처럼 큰 소리로, 귀 어두우신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 손때가 묻었을 의자, 책상, 베개, 리모컨, 모든 스위치와 손잡이들, 수도꼭지까지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만져본다
의자의 방석들을 어루만지고, 자주 입으시던 옷들의 소맷자락을 잡아본다
모자도 써보고, 지팡이도 잡아보고, 방전된 핸드폰도 쥐어보고, 보청기도 꺼내서 만져보고

모든 물건은 그대로인데 텅 빈 공간
사람 하나 없을 뿐인데

쉽게 방을 나오지 못하고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서성거리다
아버지, 어디 가셨어요
이번엔 작은 목소리로 아버지를 찾는다

나오다가 신발장을 열고 신발들을 본다
어느 신발을 신고 가셨을까
어느 하나는 정령 精靈 없는 신발일 것이다

빈집, 빈방

떠나신 지 91

권대현 (youngju@new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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