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삼성과 베트남 간에 일어난 갈등이 자주 회자된 적이 있었다. 삼성의 가히 천문학적 숫자라 할 수 있는 투자를 오히려 약점으로 이용하려 한 베트남 당국의 몰염치한 행동과 이에 경각심을 갖게 된 삼성이 인도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함으로써 삼성 의존도가 높은 베트남 경제가 크게 휘청거리게 된 사건이었다.
투자 유치 단계에서는 무엇이라도 다 해줄 것처럼 삼성에 우호적 태도를 보였고, 삼성도 그에 호응하여 대규모 투자를 통해 베트남의 경제 발전의 중요한 축이 되어주었다. 그 과정에서 삼성은 사회 복지와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등 모범적인 해외 진출 사례라 할 만큼 선의의 기업 활동을 이어왔다.
하지만, 베트남 측은 처음 약속했던 세금 혜택을 백지화하고, 고급 기술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사전 통보도 없이 전기를 차단하여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게 만드는 등 몰염치한 태도로 삼성을 압박하였다. 그들은 ‘이미 천문학적인 투자를 한 삼성이 뭘 어쩌겠냐?’는 안일한 자세로 삼성을 대하였고, 결국 그들의 그릇된 판단은 ‘이익 창출’을 최고의 목표로 하는 기업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 앞에서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
이 사건의 교훈 중 하나는 계속되는 선의를 상대방이 하나의 권리로 생각하게 될 때 신뢰는 발붙일 곳을 잃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례는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 나 또한 씁쓸한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내막을 잘 알고 있는 회사 한 곳이 신기술 개발에 성공하고 상장을 준비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어느 회사 건 그 상태에서는 자본의 소요가 발생하고, 양질의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상황을 잘 아는 나는 상장의 가능성과 회사의 신용도를 높이 평가하여 주위의 지인들에게 투자를 권유하였다. 그 대상들은 내가 호감을 갖고 있거나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들이었고, 여차하면 내 개인적 능력으로 손실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규모였다. 그렇게 투자를 유치하고 삼 년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그 회사는 상장에 이를 만큼 성장하지 못한다. 결국 그 회사는 상장을 포기하고 투자금에 복리의 정기예금 이자를 붙여서 되돌려 주게 된다.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아쉬워하면서도, 이자를 붙여서 회수할 수 있게 된 것에 고마움을 표하였다. 개중에는 밥이라도 한 번 대접하겠다며 고마움을 표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지병을 갖고 있어서 정말 도와주고 싶어 포함시켰던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사채이자를 들먹이며 그 정도는 해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따지기 시작한다. "내가 어떤 반대급부를 얘기한 적도 없고, 단순한 선의에서 시작한 일임을 알고 있지 않느냐? 따라서 상장에 성공해서 몇 억을 벌었다고 해도, 나에게 얼마를 떼어줄 일도 없는 것 아니냐? 투자라는 것이 말 그대로 큰 이익을 위해 돈을 던지는 것으로, 원금에 복리의 정기예금 금리로 보전받는다면 그것은 실패한 투자가 아니다."라고 설득해도 안하무인. 계속 사채금리 이상을 주장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종종 토로하던 그 친구를 위해 선의로 끌어들였던 내 입장에서는 이런 억지를 그 회사에 전달할 수도 없고, 또 회사의 회계 규정으로도 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정말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 친구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으로 한 때 사채 등 불건전한 일에 관여하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막무가내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렇다고 맞서서 논쟁을 벌이기에는 그 친구의 건강이 걱정되어서, 그냥 듣고 마는 식으로 일을 마무리한다. 그 친구와 거리가 멀어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다시 몇 년 세월이 흐르고, 우연히 그 친구가 마치 내가 자신의 돈을 떼어먹은 것처럼 나를 험담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이가 없었지만, 따지기도 귀찮고 그럴만한 가치도 없는 일이기에 그냥 듣고 말았다. 살면서 선의로 시작한 일이 악의로 되돌아오는 일이 어디 이 일뿐이겠나 싶었다. 상대의 무지를 탓하기 이전에, 나의 사람 보는 안목이 미흡했음을 탓했던 씁쓸한 기억이다.
몸이 아픈 것을 측은하게 여기고 계속 선의를 베푼 내게 더 한 선의를 요구했다고도 할 수 있는 그 사건에서 새삼 '관계의 어려움'을 생각하게 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했던가? 베푼다고 다 선의가 되는 것도 아님을 깨닫게 한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무엇인가를 베풀 때 더 행복해지는 내 모습이 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