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夏夏夏) / 글가람(본명.안태희)
저, 저런 일이
나뭇가지가 바람 가두고 있다
겨울잠 깨어나 앙상한 젖 빨고 있는 아기바람
저, 찬란한 시간 나뭇가지에 갇혀 발버둥치는 초록바람
맑고 고운
저 한때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흔들리지 않고 머문 시간이란 없다
끊임없이 흔들리며 봄을 낳고 있는 꽃샘바람
한 채의 봄이 완성되면
여름을 잉태할 것이다
왁자한 꽃소리 공중을 어지럽게 흔들고
비는 물소리만 부풀린다
빗소리 끊어다 칼국수 끓이는 봄비 파란 날
난데없이 끌려온 여름
거머쥔 몸체 휘휘 감아 끌고 가는 청단 머리채에
뚝뚝 떨어지는 웃음소리 하하하(夏夏夏)
어쩔고!
요동치는 풍난에 살피지 못한 한
한 마리
바람 혈액형은 A도 O형도 아닌 집시형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유전자는
욕심 많은 계절, 전염병을 무상재배하고 있다
바드랏재* / 글가람(본명.안태희)
숨 흔들며 올라간 고개
여린바람에도 한숨 짓는 한계령
비바람 눈보라에
목숨 부여잡고
길고 험한 시간들 쌓인 곳
권력도 총칼도 하늘에 꽂고
맑은이슬에 목축이고
바람에 가슴 씻는 새떼 보며
날지 못하는 마음
부끄러이 부끄러이
우련한 꽃물 번지는 생앞에
파리되어 두 손 모으고
싹싹 빌어볼까나
아아니,
빌어도 빌어도
다다르지 못할 한계
으스스,
한 떨기 피어나는 가슴바람아!
유령 /글가람 (본명.안태희)
유령은 지구를 가지고 논다
초록 입술로
달빛 햇빛 휘감아
무심히 짓밟는다
봄햇살 한 잔 마시려다
잔속에 동동 뜬 유령
깜짝놀라
더듬더듬 창문을 나가니
흙을 뚫고 올라온
개망초 한 무더기
햇살 틈바귀에 끼어
배고픈 시간을 견디며
바람 한 모금의
결재를 받기 위해
간신히 버틴 흔적이 파랗다
봄향기가
포르말린처럼 휘날리는 공중
차가운 심장을 가진 유령은
봄을 와작와작 뼈째로 씹고 있다
곧 봄은 다 먹히고
여름이 올 것 같은 예감
콩들이
콩알콩알
가슴 속에서 콩꽃을 피우고 있다
글가람 시인의 글 줄기가 끊임없이 흘러 여름을 만나면 ‘하하하(夏夏夏)’ 여름 웃음소리가 시원하고 푸르르게 들리는 듯하다.
‘저, 저런 일이/ 나뭇가지가 바람 가두고 있다’ 바람이 가지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저, 저런 일이 나뭇가지가 바람을 가두고 있다는 역발상이다. ‘겨울잠 깨어나 앙상한 젖 빨고 있는 아기바람/ 저, 찬란한 시간 나뭇가지에 갇혀 발버둥치는 초록바람// 맑고 고운/
저 한때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흔들리지 않고 머문 시간이란 없다’ 우리가 어디서 태어나 어디로 가는지 아는 이는 없다. 자연에서 인간의 삶을 꺼내 잘 이미지화 시킨 시이다. 인간의 삶은 얼마나 찬란한 시간인가? 거기에 갇혀 발버둥 칠 때까지는 초록이지만 그 초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알지 못한다.
‘한 채의 봄이 완성되면/ 여름을 잉태할 것이다’ 삶도 그렇게 봄 한 채처럼 태어나 여름으로 넘어가고 ‘왁자한 꽃소리 공중을 어지럽게 흔들고/ 비는 물소리만 부풀린다/ 빗소리 끊어다 칼국수 끓이는 봄비 파란 날’ 비가 물을 불리는 것이 아니라 물소리를 불리고 그 빗소리 끊어다 칼국수를 끓여 먹는 상상속으로 ‘난데없이 끌려온 여름/ 거머쥔 몸체 휘휘 감아 끌고 가는 청단 머리채에/ 뚝뚝 떨어지는 웃음소리 하하하(夏夏夏)’ 웃음소리를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로 만들어 독특하고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한글이 아니면 불가능한 동음다의어를 잘 활용한 시다. 또, ‘바람 혈액형은 A도 O형도 아닌 집시형’도 아주 기발한 발상이다. 인간의 혈액형에 집시형이란 혈액형 하나를 더 첨가한 것이다. 그리고 그 혈액형은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유전자’로 ‘욕심 많은 계절, 전염병을 무상재배하고 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바드랏재’에서 시인은 ‘숨 흔들며 올라간 고개 여린바람에도 한숨 짓는 한계령/ 비바람 눈보라에/ 목숨 부여잡고/ 길고 험한 시간들 쌓인 곳’이라고 했다. ‘맑은이슬에 목 축이고/ 바람에 가슴 씻는 새떼 보며/ 날지 못하는 마음/ 부끄러이 부끄러이/ 우련한 꽃물 번지는 생앞에/ 파리되어 두 손 모으고/ 싹싹 빌어볼까나’ 어둠을 뚫고 세상을 건너온 언어들이 우련한 꽃물 번지는 생앞에 싹싹 빌어본다는 말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고 생명 존재에 대한 탐색과 사유의 깊이에서 비롯되는 숭고한 생명들에게 임하는 낮은 자세인 것이다. 경이와 그리움 숭고는 자연에서 발현하는 것으로 초자아(超自我)를 들여다보며 현재의 자신을 깊이 통찰하고, 그리하여 평범하고 상식적인 것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끌어들여 감동으로 전달하며 자연과 인간이 공동체임을 생각하게 만든다. 다음 시 ‘유령’을 보면 더욱 그 이유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유령은 지구를 가지고 논다
초록 입술로/ 달빛 햇빛 휘감아
무심히 짓밟는다
봄햇살 한 잔 마시려다
잔속에 동동 뜬 유령
깜짝놀라/ 더듬더듬 창문을 나가니
흙을 뚫고 올라온
개망초 한 무더기
햇살 틈바귀에 끼어
배고픈 시간을 견디며
바람 한 모금의
결재를 받기 위해
간신히 버틴 흔적이 파랗다
봄향기가/ 포르말린처럼 휘날리는 공중
차가운 심장을 가진 유령은
봄을 와작와작 뼈째로 씹고 있다
곧 봄은 다 먹히고/ 여름이 올 것 같은 예감
콩들이/ 콩알콩알
‘유령’ 전문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적 언어로 승화시킨 걸작이다. 그는 사랑에 대해서 ‘비록 그 길이 힘겹고 험난할지라도’ ‘비록 그 날개 속에 숨겨진 칼에 상처를 입더라도’ ‘북풍이 정원을 폐허로 만들듯 그 음성이 그대의 꿈을 흔들지라도’ 고통에 대해서는 ‘매일 날마다 일어나는 삶의 기적들을 가슴속에 경이로움으로 간직한다면 그 고통도 경이로움을 가져다준다.’라고 추이(推移)를 내다보고 자연에게 자신을 던져 거스르지 말고 자연스럽게 삶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라고 말한다. 글가람 시인도 환경을 위해 밤을 까맣게 태우고 고민하며 시간 햇살 틈바귀에 끼어 바람 한 모금의 결재를 받기 위해 간신히 버틴 흔적이 보이고 차가운 심장을 가진 유령이 봄을 와작와작 뼈째로 씹혀 곧 다 먹히고 말 거라는 예감을 콩들이 콩알콩알 한다고 자연의 경이로움으로 고통을 치환(置換)시키고 있는 것은 고도의 통찰이 아니면 쓰기 어렵지만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가장 잘 이해하고 쓴 이 시가 전 지구 사람들 심장도 콩알콩알 움직여 지구가 살아났다는 기별이 오길 기대해본다.
# 이서빈 약력
이서빈 시인
■경북 영주 출생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달의 이동 경로’‘함께,울컥’민조시집‘저토록 완연한 뒷모습’ ‘창의력 사전’外
■한국 문인 협회 인성교육 위원
■한국 펜클럽 회원
■시인뉴스.모던포엠.현대시문학 편집위원
#글가람(본명.안태희) 시인 약력
글가람 시인
*강원도 평창 출생
*남과 다른 시 쓰기 동인
*창작수필 등림
*서울 문학 등림
*산문집‘첫눈위의 발자취’
*수필집‘하늘로 문난 집에 시집보낸다’
*초등학교 교장 정년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