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빈 (대하소설 소백산맥 17권 중 제1권)
달을 먹은 산 (2)
너그메는 참말로 불쌍한 사램이데이. 우째 생각하믄 인제 그 고상 다 접고 훌훌 자유롭게 살 수 있어 잘 된 긴지도 모를 일이다.
참말로 시상에 뚝 떨어질 때 고상 줄을 목에 걸고 나온 아다.
니 위할매는 갸를 놓고 보름도 안 된 어느 날 거랑에 빨래하로 간다고 가 안죽도 안 돌아오고 있다. 이웃에 같이 빨래 하로 간 사램 말을 들으믄 빨래를 하로 다싯이 갔는데 나 많은 사램 둘은 안 끌래가고 젊은 사램 싯은 그 숭악한 일본눔이 강제로 끌고 가뿌랬단다.
니 위할매도 어데론가 끌래 가뿌래고 갸는 핏데이로 나뒹굴었다.
지그메 잃은 걸 아는지 억시가이도 울어댔제. 당장 미겔 젖은 없고 니 위할매는 찾아야제. 니 위할배는 미친 사램맨치 면소재지까짐 찾아 댕기느라 정시이 없었제.
같이 끌래간 사램 남핀들과 온 가족이 백방으로 수소문하민서 찾았지만 헛일이었다.
지끔도 어데서 멀 하고 있는지 죽었는동 살았는동 모른다.
단지 일본눔들이 억지로 끌고 갔다이까 추측만 할 뿌이제.
듣고 있던 숙명이 불에 데인듯 외삼촌을 향해 한 마디 던진다.
그럼 혹시 위안부?
에이 그 흉칙한 소리 하지도 마라. 소름돋는다. 고만 내 말이나 계속 듣거라.
진옥은 애써 위안부란 말을 부정하면서 다음 말을 이어간다.
그 다음부텀 우리마 거랑에 빨래 하로 갈 때는 젊은 새댁들은 못 가게하고 할매들만 빨래를 하로 갔다. 우리 마는 완전히 비상사태였제. 참말로 지끔 생각해도 우왜 살았노 싶다. 다행이도 햇빛 같은 맴씨를 가진 행동어른이 이 마 갓난 언나들 젖동냥을 해줬제. 나는 어메를 찾을라꼬 날매둥 거랑 가에 가봤제만 어메는 안 나타났제.
이 마 사램들이 불쌍타고 쯧, 쯧, 쯧, 쯧, 혀 차는 소리에 나는 돌메이를 집어 던지민서 물수제비만 뜨다가 엄마는 커녕 엄마 그림자도 못 보고 소문 한 알개이 못 줍고 해 그느름 하믄 터덜터덜 집에 왔제.
어메가 없어진 다음부터 하로도 잊은 날이 없다. 차라리 돌아가싰으믄 포기나 하제. 죽은동 산동도 모르는 이 답답한 심정은 아무도 모를 기다.
니 위할매는 어린 동상이 눈에 밟히지도 않는지 꿈에도 한 분 안 나타난다.
꿈에라도 한 분 보고 어데 있는 것만 알아도 좋으련만….
여기까지 말한 진옥은 벌써 목소리가 젖고 눈물이 그렁거려 고개를 뒤로 젖히더니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한참을 있다가 다시 온다. 숙명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외삼촌이 다녀오는 시간이 열흘도 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무렵 붉게 충혈된 눈으로 돌아와 물 한 대접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간은, 사램의 목심을 노예맨치 부래 먹다 아무 값도 지불하지 않고 내뿌랜다.
욕망과 좌절을 끊고, 갈등도 아픔도 전부 끊고, 저승이란 주소도 분맹치 않은 데로 델꼬 간다. 이승 사램이 다시는 볼 수 없는 먼먼 진짜진짜 아득히 먼먼 데로.
나는 어메가 돌아가싰다고 믿기로 했다.
이 마 사램들은 날 보고 어메가 돌아가싰다고 생각하고 동상 돌보민서 살아가라고 말했제. 나는 뒷동산에 쪼매하게 흙을 끌어마서 똥그랗게 어메 미를 맹글었다.
숨을 못 쉬 죽을 것 같앴제. 뒤돌아 올래갔다 내리오고 또 올래갔다 내리오기를 수백 분을 반복했다. 그릏지만 나는 니 위할매한테 티끌만한 도움도 주지 못 했제.
보름달이었던 달은 뱃속에 빛을 이승에 두고 홀쭉한 배로 저승인지 어덴지로 갔제.
홀쭉한 그믐달이 대낮에도 쪽빛 울음을 울민서 하늘을 맴돌았제.
지어미 잃어뿐 걸 어린것이 알았는동 동상은 자지러질 듯, 한여름 매미보다 더 울어대드라. 저 어린 것 불쌍해서 우째냐민서 행동어른은 자신의 젖이 안 나오면 언나 낳은 집 젖을 얻어 와서 갸를 먹있제. 동상이 옷에다 오짐을 싸고 똥을 싸도 니 위할배는 걸떠보지도 않아 내가 오짐도 닦아주고 똥도 치워주고 했다.
옷도 없어서 니 위할매가 끌래 가시기 전에 입던 광목천을 째서 만든 치매맨치 생긴 옷을 만들어 입했다. 나는 부지러이 옷을 씨 입해고 동냥해온 젖도 미게고 했다.
그릏지만 얻어다 미게는 젖이 많으믄 울매나 많았겠노.
젖배를 참 마이도 곯았데이. 일곱 살이 될 때까짐 동상이 없던 나는 갸가 참 이쁘더라. 그릏지만 이쁜 거는 잠까이고 맨날 나무 젖으로는 모자래 배가 고픈동 끝 모를 자기의 험난한 앞길을 예견이라도 했는동 하도하도 마이 울어서 울보라고 했제.
젖을 먹고도 울 때는 하도 미와서 꼬집기도 하고 때리기도 했다.
지끔도 그때를 생각하믄 죄스러워 죽겠다.
눈도 깜빡 않고 귀를 세우고 듣는 숙명을 보며 진옥은 구름과자를 또 한 모금 볼이 쏙 들어가도록 빨아 먹는다. 연기는 후후 자유를 찾아 하늘로 날아오른다.
진옥의 손가락은 재떨이에 죄스러움을 비벼대고 있다. 구름과자 냄새가 풀풀 날아다닌다. 연기가 잠자던 옛일을 다시 벌떡 일으키는지 진옥의 이야기가 다시 고치 속 명주실처럼 술술 풀려나온다.
원래 우리 집은 만석꾼 집안이었단다. 그른데 왜눔들이 곡물을 공출이란 이유로 다 거둬가고 집안에 쓸 만한 그릇까짐 다 가주가 버맀제.
맞서서 싸왔제만 역부족이였제. 어느 날 불한당 같은 눔들이 또 와서 억지로 곳간을 털어갔다. 분을 못 이긴 니 위할배는 이 쪽발이 눔들! 해도해도 너무 하지 않냐,
나무 나라에 거머리맨치 달라붙어서 우리 조상이 맹글어 놓은 글도 갈채지 마라, 이름도 바까라, 말까짐 다 빨아 처먹고, 곡물 공출 처녀 공출에다 인제는 먹고 살 양식 까짐 다 뺏아가다이 하늘이 두렵지 않냐.며 마구 대들다가 끌래 갔제.
니 위할배가 끌래간 후로 우리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끌래간 니 위할배가 석 달 후 집 앞에 반 시체로 버래졌다.
정성을 다해 돌봤지만, 정신이 반쯤 나갔단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헛소리만 계속 공중을 날던 그 순간에도 시상은 아무 일도 없단 듯이 빙글빙글 돌아갔제.
니 위할배가 기운을 차랬지만 정신은 만신창이가 되었제. 니 위할배가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쯤 살무사 같은 눔들 및이 와서 우리 식구를 억지로 쫓아냈다.
그래곤 구르마에 자기네 이삿짐을 우리 집으로 나르고 자기네 집맨치 들어앉았제.
분매이 우리나라 사램들이었어.
가타부타 말도 없이 우리 짐들을 전부 꺼내놓고 자기네 짐으로 자리를 바꾸고 우리 식구를 몰아냈다. 니 위할배는 지서장이나 민서기들을 만내로 갔다.
그릏지만 전수 그짝 핀이 되어 안맨 몰수하민서 개인 일에 끼어들 수 없다고 했다.
그 숭악한 시월 속에 착한 시월도 숨게있었다.
이웃에 그래 넉넉지도 않은 행동어른이란 분이 방 한 개를 줬다.
그 방 한 개가 우리의 힘들고 고달픈 잠을 따습게 띠사 주었제.
그릏지만 니 위할배는 술로 시월을 달랬단다. 한시를 쓰시고 한학을 하싰던 대쪽맨치 곧은 니 위할배는 분통을 이기지 못해 거의 반미치광이 같앴다.
행동어른의 배려 덕분에 하로하로 끼니를 때우민서 살던 궁핍한 시절 니 위할매가 갸를 놓고, 그 왜눔들한테 끌래 갔으이 니 위할배 심저이 우땠겠노?
지끔은 짐작이 가제만 그때는 난 아무꺼도 몰랬제. 그냥 매일 니 위할매만 보고 싶었제. 이래저래 시간은 가고. 니 위할배는 가끔 나무집 일을 해주고 보리쌀을 얻어 와서 보리죽으로 입에 풀칠을 하민서 우리 세 식구는 질개이맨치로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갔제. 열 살이 되어서야 제우 핵교에 디갔다.
핵교에 가이 어메도 없는 아 라민서 아들은 아무도 내 동무가 되어주지 않았제.
버버리 장갑 하나도 없는 나는 입을 다물고 버버리맨치 살았제.
그래도 집에 오믄, 저 멀리서 그 어린 게 막 뛰와서 오빠를 부르민서 내게 안기는 게 최고 낙이었제. 갸를 보믄 내 맴엔 늘 초록 풀물이 들었제.
꽃대궁을 흔들민서 서서 애기똥풀맨치 노랑노랑 웃으미 크는 모습이 구여웠제.
그릏게 갸를 돌보민서 핵교를 댕갰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동무들의 놀림은 심해졌제.
준비물도 준비를 못 해가고 체육 시간엔 교실 한짝 꾸서케 쪼그래고 앉아 운동장에서 땀 흘리민서 몸으로 말하는 동무들을 창문을 통해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어야 했제. 크레용도 도화지도 없고 어메도 없고 미술 시간만 되믄 두려움이 앞서 식은땀이 등줄기를 질척질척 적샜제. 없는 죄로 감수해야 하는 채찍의 맛은 쓰라리고 매웠제.
손바닥을 맞아야 죗값을 탕감받기에 핵교가 가기 싫었제.
두렵고 챙피해서 체육이나 미술이 있는 날은 진짜진짜 핵교가 가기 싫었제.
그릏지만 행동어른은 아부지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램 되라고
입버릇맨치 용기를 불어넣는 바램에 그럭저럭 핵교에 댕기고 있었제.
먹구름 뒤에 드리우는 흰 구름은 눈이 부시는 법인동 내 불맨스런 맴을 눈치를 챘는동 신(神)은 감옥 같은 테두리를 벗어나게 해줄 구세주를 보냈제.
3학년 말, 핵교가 끝나고 방에다 책보를 떤재놓고 마당으로 나오는데 주인집 마리에 웬 시님이 앉아 있었제.
나를 보자 자가 진오기이껴? 하고 물었제.
야! 내가 진옥이씨더. 왜요? 한 분도 본 적 없는 그 야릇한 옷을 입은 시님을 쳐다보았제. 니 참, 똑똑하게 생갰데이, 됐다. 진오가 내하고 좋은데 가 살자.
니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아주 좋은 데가 있다.
거가 살믄 내중에 누구보다 훌륭한 사램이 될 거다.
그래이 니 한 분 좋은 데 가서 살아보지 않을래? 핵교 선상님보다 훨씬 더 선상님 같은 말을 했제. 나는 핵교에 가서 놀림 받는 것도 싫고 해서 야, 따라 갈라니더. 델꼬 가 주소. 하고 말했제. 그 시님은 사흘 후에 다시 올께이 준비하고 있으라고 불룩한 바랑 같은 말을 남기고 갔제. 행동어른께서 내 손을 잡으민서 말했제.
니 아부지는 하루 품 팔아 미칠 술 마새뿌래고 너들은 돌볼 생각도 않고 정신을 못 채리서 니라도 절에 보내믄 정신을 차릴까 하고 내가 시님한테 부탁했다.
오랜 시월 단골로 댕긴 절이제. 시님도 좋으시고. 거게 가보이, 니 보담도 어린아들도 있길래 내 부탁을 했다. 안 내키믄 안 가도 된다. 내 원망하지 말고 잘 생각해 보그라. 행동어른은 다정하게 말했제. 아이래요. 고맙니더. 나도 진짜 핵교 가는 게 싫니더. 한 분 따라가서 살아 볼 게시더. 사흘 동안 나는 그 지겹던 핵교에 안 가도 된다는 철없는 생각에 맨날맨날 휘파람을 불민서 기다랬제.
정확하게 사흘 후에 시님이 오싰드라. 동상을 두고 가는 게 맴이 아팠제 딴생각은 한 개도 안 나고 좋기만 하드라. 나는 말했제. 내 가 보고 좋으믄 니도 데리로 올게이까 기다래라고. 동상은 소매 깃으로 눈물을 훔치민서 말했제. 오빠 빨리 와야 돼 약속. 하고는 어린 손꾸락을 내밀었제. 나도 꼭 데리로 올 거라 생각하고 손꾸락을 걸민서 약속을 했제. 좋은 데 가서 산다고 생각하이 참으로 기부이 좋았고 설렜다.
철딱서니 없이. 시님은 나를 델꼬 앞장서서 걸었제.
꼬
불
탕
꾸
불
텅
비탈질이 나를 반겠제. 비탈진 둔덕은 내 몸띠이 안에 숨을 할딱거리게 했제.
질가에 꽃들이 온몸띠이를 흔들민서 날 반게주었제.
한참을 걷다가 시님은 질가에 큰 방구위에 앉아서 쉬었다 가자고 했제.
방구가 울매나 크고 좋은동 나는 거게 앉아서 놀고 싶었제.
시님은 바랑 끈을 풀디이만 생전 보지도 못한 하얀 빵떡 한 개를 꺼내서
힘드고 배고프제? 이거 머라. 하고 내밀었제. 나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얼릉 받아 멌제. 울매나 맛나든동. 지끔도 가끔 그 빵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및 십리를 걸었든지 발꼬락에 물집이 벙글벙글 집을 짔다.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에야 절깐 같은 침묵 소리가 녹아내리는 말로만 듣던 절이란 데에 도착했다. 지끔 생각하믄 억시이도 가까운 거린데 그때는 왜 그래 멀고 험하든지. 발꼬락이 빠재나가듯이 걸어서 도착한 절 이름은 ‘부석사’였다. <다음 호에 계속>
# 이서빈 약력
■경북 영주 출생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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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인 협회 인성교육 위원
■한국 펜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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