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정 구 민
입이 말라 잠깬 새벽 생명수 한 모금에
샘물처럼 새롭게 돌아나는 결핍
쓰나미가 밀어내도 인류와 같은 쪽으로 치닫는
바이러스꽃(the virus flower)
지구에서 붉은절정 피워 올린다
로봇노예가 될 과학 나침반 흔들흔들
신의 심술일까?
첨단 과학시대 거리두기 양팔 벌린다
제한급수시대 초래한 인간 욕망
망초꽃 눈동자마저 건조하다
기후를 이길 수 없는 자연
자연을 이길 수 없는 인간
바다를 마시고 전설을 낳은 갈매기, 검푸른 바다 와글 거린다
바닷물 염분 빼는 고육지책
수위 낮아지는 바다
물은 재생에 재생을 한다
자연이 몸을 바꾸는 소리 아찔하다
젖은 기적/ 정구민
모든 기적은 물에서 일어난다
지나온 세상도 앞으로의 세상도 물이 통치할 것이다
물줄기를 엿가락처럼 늘리고 별빛처럼 부수는
물의 장인은 왜 없는지
물에서 시간을 발효시켜 생명 태어나는 소리
바람 날개 달별빛 햇빛 숨기고 하늘을
종횡무진하는 것도 물의 마법이다
어제 죽은 물은 조약돌이 되어서 묵묵히 가라앉아
수많은 전설을 전하지만 그 암호를 해석하는 것은
물 뿐이다
현실과 이상적 과녁이
논둑을 부는 풀피리소리에
물뱀도 너울 춤추며
우 우 우는 계절
물은 속내를 모두 숨기고 오로지 등만 보여준다
사람의 뒷모습에 모든 것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젖은 기적이다
물사슴/ 정구민
물사슴 울음소리 출렁인다
바람 신고 다니다가 닳으면 구름을 신고
죽음보다 캄캄한 곳을 향해 물을 찾아나선다
안개는 산허리에
고삐 매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각을 세운다
같은 곳을 향한 다른 시선
굶은 날이 많을수록 물기는 허물어지고
뿔로 허공을 들이받아 빗물을 찾아도
마음빗장을 열지 않는 하늘
구름이 흐르고 별빛이 흐르고 마음이 흐르고 정신이 흐른다
흐르지 않는 건 물
지뢰밭에 발목 잘린 아기 물사슴
목을 축이지 못하고
하늘 쳐다보는 흰 눈망울이 허옇게 뒤집힌다
새벽 맑은 찬물에 비친 아기 물사슴 젖 빠는 소리
이젠 전설이 되고
무한한 초록 찾아 헤매는 지구의 현주소는?
정구민 시인의 시들을 읽다 보면 영화 ‘아바타’가 생각난다. 혁신적인 기술로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아바타’의 후속편 ‘아바타: 물의 길’은 전편에 이어 제임스카메론 감독이 다양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자궁으로서 물의 길을 보여주고 물의 생명력을 예찬하며 삶의 순환을 노래하면서, 인간이 가장 즐거워하는 교감의 순간과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환의 시간이 강렬하게 펼쳐지는 영화다. ‘남과 다른 시 쓰기’ 2집이 물을 주제로 쓴 것과 이 영화가 흥행하는 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두려움이 앞선다.
‘입이 말라 잠깬 새벽 생명수 한 모금에/ 샘물처럼 새롭게 돌아나는 결핍 // 쓰나미가 밀어내도 인류와 같은 쪽으로 치닫는/ 바이러스꽃(the virus flower)/ 지구에서 붉은절정 피워 올린다’ 쓰나미와 바이러스꽃에 밀려나면 인간도 판도라 행성에서 가족이 겪게 되는 무자비한 위협과 살아남기 위해 떠나야 하는 긴 여정과 전투, 그리고 상처를 영화에서처럼 견뎌내야 할 지도 모른다.
‘로봇 노예가 될 과학 나침반 흔들흔들/ 신의 심술일까?/ 첨단 과학 시대 거리두기 양팔 벌린다// 제한급수시대 초래한 인간 욕망/ 망초꽃 눈동자마저 건조하다// 기후를 이길 수 없는 자연/ 자연을 이길 수 없는 인간’ 우리가 지구를 떠나면 과연 ‘멧케이나’ 부족이 ‘설리’ 가족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우리를 받아들이는 또 다른 지구의 부족이 있을까? 그래서 타인과 가족, 자연 등 모든 것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은 ‘아바타’ 시리즈 같은 지구 밖에 세상이 있을까? 반문해 보게 한다. ‘바다를 마시고 전설을 낳은 갈매기’ 전설처럼 지구가 사라지면 전설을 낳는 갈매기가 있을까? ‘자연이 몸을 바꾸는 소리 아찔하다’ 시인은 이미 몸을 바꾸고 있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다. 우리도 환경을 지키지 못하면 저 부족처럼 지구를 떠나 어디론가 가야만 할 것이다. 다음 시 ‘젖은 기적’을 보자. 시인은
‘모든 기적은 물에서 일어난다// 지나온 세상도 앞으로의 세상도 물이 통치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물 없이는 잠시도 살지 못한다. 모든 생명은 ‘물에서 시간을 발효시켜 생명 태어나는’ 것이다. 아바타에서 물의 길을 말하듯 ‘수많은 전설을 전하지만 그 암호를 해석하는 것은/ 물뿐이다.’ 라고 자연의 암호를 해석하는 건 물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에서 보면 바다로 터전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가족의 응집을 강조하기 위해 ‘가족이 우리의 요새야’라는 대사로 설득을 한다. ‘현실과 이상적 과녁이/ 논둑을 부는 풀피리소리에/ 물뱀도 너울 춤추며 우 우 우는 계절’ 많은 위협으로부터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바다로의 이주를 감행하지만, 삶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온갖 시행착오를 겪는 이유는 ‘물은 속내를 모두 숨기고 오로지 등만 보여’ 주기 때문에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하는 ‘설리’ 가족은 무차별한 공격과 착취 판도라 행성의 파괴를 야기시키며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시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게 한다. ‘물의 길에는 시작도 끝도 없어. 물은 네가 태어나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계속 존재해. 물은 모든 곳과 연결돼.’라는 대사는 멧케이나 부족인 ‘츠이레야’가 물에서 숨 쉬는 방법을 처음으로 배우는 ‘로아크’에게 건네는 말로,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아바타: 물의 길’의 주제 의식을 내비치며 많은 이들에게 진한 여운을 전하고 있듯 ‘사람의 뒷모습에 모든 것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젖은 기적이다’고 정구민 시인은 시로 대변하고 있다. 다음 시 ‘물사슴’도 물의 길을 안내하는 작품이다. ‘물사슴 울음소리 출렁인다// 바람 신고 다니다가 닳으면 구름을 신고/ 죽음보다 캄캄한 곳을 향해 물을 찾아나선다/ 같은 곳을 향한 다른 시선/ 굶은 날이 많을수록 물기는 허물어지고/ 뿔로 허공을 들이받아 빗물을 찾아도/ 마음빗장을 열지 않는 하늘// 구름이 흐르고 별빛이 흐르고 마음이 흐르고 정신이 흐른다/ 흐르지 않는 건 물/ 지뢰밭에 발목 잘린 아기 물사슴목을 축이지 못하고// 하늘 쳐다보는 흰 눈망울이 허옇게 뒤집힌다’ 영화에는 바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액션(action)이 들어가 있다. 바다 밑에서 싸울 수도 있고, 잠수해서 혹은 물 위에서 찰랑거리면서 싸올 수도 있고 수면에서 점프하면서 하늘 위에서 싸울 수도 있다. 시인의 시처럼 수중 생태계에 경이로운 시선 액션 장면 한 번 펼쳐보지 못하고 하늘 쳐다보는 흰 눈망울이 허옇게 뒤집히는 것은 너무나 억울하지 않을까? 이 영화 1편에서는 열대우림 나비족 중에서도 숲에서 살아가는 숲부족 주인공들의 삶이 펼쳐지고 2편에서는 이들 사이에 생긴 문제에서 주인공 가족만 떨어져나와 갑자기 열대우림에 살던 아이들이 바닷가로 전학을 가서 피부색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달라 왕따를 겪고 다툼도 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어떻게 서로가 연결되어 전체를 이루는지, 지금 우리 현실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이 변형된 대작이다. 공기 중에서만 살 수 있는 우리는 물속에서도 살 수 있는 생명을 처음 본 순간 벅차오른다. 왜냐하면, 우주가 사라지면 우리는 어디로 가서 저렇게라도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다. ‘명불허전’이란 말이 있다. ‘아바타: 물의 길’ 이야기야말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지구촌 가족이 함께 힘을 합하지 않으면 지구 밖으로 이전해야만 한다는 강한 메시지가 담긴 영화다. 영화는 영화라서 이주할 공간이라도 있지 인간은 ‘새벽 맑은 찬물에 비친 아기 물사슴 젖 빠는 소리/ 이젠 전설이 되고// 무한한 초록 찾아 헤매는 지구의 현주소는?’ 영화에서처럼 이전해 갈 주소도 없어서 젖 빨던 힘까지 다 게워내며 환경을 살려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는 시인의 시야말로 이 시대에 ‘명불허전’이란 말이 구구절절 실감 나는 작품이 아닐까? 이 시향이 영화처럼 전 지구를 명불허전 향기로 강타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 정구민 시인 약력
정구민 시인
*충북 영동 출생
*한국 방송통신 대학교 국문과 졸업
*남과 다른 시 쓰기 동인
# 이서빈 약력
이서빈 시인
■경북 영주 출생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달의 이동 경로’‘함께,울컥’민조시집‘저토록 완연한 뒷모습’ ‘창의력 사전’外
■한국 문인 협회 인성교육 위원
■한국 펜클럽 회원
■시인뉴스.모던포엠.현대시문학 편집위원